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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는 푸르며 항상 차갑다. 한국은 3면이 바다이다. 드넓은 바다, 망망대해에서 발생된 한국에서의 최악의 바다 사건(해운 사고)에 대해서 이야기를 풀어본다. 억지로 끼워 맞춘 것 같지만 한국의 바다에서 발생된 대형 해운사고는 20년 주기성이 존재한다. 국내 대규모 해양 참사가 잇달아 발생된다는 것은 미스터리 같지만 3건의 사고의 주기가 20년이다. 1953년 창경호, 1970년 남영호, 1993년 서해훼리호, 2014년 세월호까지 200여 명 이상의 사람들이 희생된 바다의 참사는 최근까지도 20년 주기로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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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바다 해양 참사 3대 사건으로 20년 주기로 발생중

 

 

한국에서 발생되는 해운 사고는 주기가 있는 것 같다 - 세월호 사건

 

미스터리 한 영상을 주제로 하는 슬립 루팡 TV에서 한국 해운 사고에 대한 4대 사건을 주제로 20년 주기설에 대한 내용의 영상이 업데이트되었다. 해당 영상을 리뷰하며 심층 분석을 해본다.

 

한국의 주요 항만의 수출, 수입 물량과 해양 레저 활동이 증가하면서, 국내 해양 사고의 위험은 시간이 지날수록 높아지고 있다. 이런 바다에서 일어나는 해양 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정책과 법령이 적용되고 시행되고 있지만 사고는 줄어들 기미가 없다.

 

국가 경제의 꾸준한 성장으로 하늘과 바다 모두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고, 한국은 특히 반도의 특성인 3면이 바다로 이루어진 지형으로 선박을 활용한 대외 무역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런 과정에 크고, 작은 해양 사고들은 100% 없어지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 중에 한국에서 발생된 대규모 해양 참사가 20년 주기로 발생되고 있는 것에 대해서 의문을 가지며 이 글을 써내려 간다. 1950년대부터 2022년 현재까지 대규모 4대 해양 참사는 1953년 창경호, 1970년 남영호, 1993년 서해훼리호, 2014년 세월호 사건이다. 이들 사건은 200여 명 이상의 사람들이 희생되는 해양 사고 목록이다.

 

과거의 4대 대형 해양 사고 참사로 발생 시점과 이후에 한국 정부에서는 재발방지 대책을 최우선으로 하고, 각종 조치와 규정, 법령을 강화하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이런 해운 사고는 20년 주기로 지속 반복이 되고 있다. 이런 대형 참사를 살펴보고, 주요 원인과 그때마다 어떤 해결책을 시행했는지? 그래서 우리는 12년 후의 미래 2034년에 예언이 실현이 되나? 안되나? 하면서 해양 참사를 다시 맞이하게 될 것인지? 이런 비극을 막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1953년 창경호 사건

1970년 남영호 사건

1993년 서해훼리호 사건

2014년 세월호 사건

 

 

1. 1953년 창경호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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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참사 1년 전 창경호 모습 _출처 : 연합뉴스

 

40대 중반인 나에게는 너무 낯선 이름의 사건이다. 하지만 한국 역사에 해운 사고의 대형 참사 기록으로 남은 가슴 아픈 사건이기도 하다. 사건이 발생한 시점은 1953년 1월 9일 10시 40분경이었다.

 

당시 오후 2시 여수항을 떠나 부산으로 향하던 정기 여객선 창경호가 부산 서남쪽 20해리 지점 다대포 인근을 항해하던 중 갑자기 몰아친 강풍과 풍랑을 만나 순식간에 침몰했다.

 

 

약 300여 명의 승객 중 7명만 생존한 사건

 

 

배에 올라탄 사람들의 인원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던 과거 시대의 자료로 참사 규모에 비해서 사고 전후 사진은 어떤 것도 기록되지 않았다. 다만 300여 명의 승객 중 단 7명(선장, 선원 3명, 중학생 2명, 군인 1명)이 생존했다는 자료는 일치한다. 미 수습된 사망자를 감안하면 실제 사망자는 더욱 많을 것으로 당시에 추정을 했었다.

 

사고 이후 국회 특별조사단은 조사를 진행했었다. 1차적으로 천재지변이 사고 원인이지만, 2차 조사 결과는 탈법과 불법으로 물든 사고인 것으로 밝혀졌다. 20년 이상의 오래된 화물용 선박을 여객선으로 개조하고, 구명보트나 구명복이 미비치 되었으며, 비상품들은 모두 배안이 아닌 창고에 보관되어 있었다.

 

본 사건으로 재판에서 검찰은 창경호 선장 등 4명에 대해 사형을 구형했고, 부산지법은 징역 3년형을 구형하는 것으로 사건은 최종 종결되었었다.

 

 

2. 1970년 남영호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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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영호 침몰 사고 시신을 운구하는 모습 _출처 : 디지털 서귀포 문화대전

 

1970년 12월 14일 17시경 제주도 남제주군 서귀포항에서 출발한 부산과 제주를 오가던 정기 페리인 남영호는 출항해서 상산항을 떠난 지 5시간 25분이 지난 15일 새벽 1시 15분. 전남 여수에서 동남쪽 28마일 떨어진 해상에서 갑자기 심한 바람으로 우현 전체에 몰아친 바람으로 갑판 위에 쌓인 감귤 상자가 좌현 방향으로 쏟아졌고, 순식간에 중심을 잃은 선체가 좌현으로 넘어가며 침몰하기 시작했다.

 

긴급구조신호를 했으나 해상 부근의 어느 무선국에서 포착하지 못했고, 당시 유일하게 긴급구조신호를 수신한 일본 해상보안청 순시선 구조시카키호가 보내준 전문을 해양 경찰은 무시했었다. 그리고 정해진 적재량을 초과하는 안전부주의와 이를 단속해야 할 경찰과 해운 당국의 감독 또한 소홀했다.

 

 

승객 311명과 선원 20명 총 331명 중 323명 사망

 

 

당시 군사 정권으로 오늘날까지 제대로 된 진상규명이 되지 않았다는 아쉬움이 컸었다. 정부 측의 무마 시도는 상당히 빨랐다. 해운 사고 발생 단 40시간 만에 탑승자들이 추위로 생존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결론을 내리고, 2일 후 시신 수색을 중단했으며, 사건 발생 후 1주일이 지난 시점에서 정부는 바다에 가라앉은 남영호가 당시 기술로는 인양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사건 당일 중앙일보와 인터뷰한 남영호 전 선장 강삼정은 해당 사건이 충분한 예견된 사고였다고 인터뷰했다. "적당히 정량을 초과해 짐을 많이 실으면 어떠냐"라고 말하면서 안전 수칙을 무시한 선주의 압력에 견디지 못해 선장에서 퇴직했다고 밝혔었다.

 

 

3. 1993년 서해훼리호 사건

 

 

1990년 10월에 건조된 110톤급 서해훼리호는 1993년 10월 10일 9시 40분경 362명의 승객과 화물 16톤을 적재하고, 위도 파창금항을 떠나 부안 격포항을 향해 출발했었다. 하지만 10시 10분쯤 임수도 부근 해상에서 돌풍을 만나 회항하려 뱃머리를 돌리던 도중에 파도를 맞아 배가 심하게 흔들리면서 전복되어 침몰되었다.

 

서해훼리호에는 9개의 구명정이 있었으나 2개만 작동되어 당시 생존자들은 2척의 구명정에 나누어 탔으며 부유물에 매달렸었다. 사고의 원인으로 기상 여건이 좋지 않은데도 무리한 운항을 강행으로 사고가 났었다. 당시 악천후로 승무원들은 출항을 안 하려고 했으나 일부 승객이 출항을 요구했었다고 전해진다.

 

 

정원 221명(승무원 14명 포함)
사망자 292명 생존자 70명

 

 

그리고 선박 운용에도 문제가 있었다. 승객은 정원을 초과했고, 배의 승무원은 규정된 인원보다 부족했으며, 배의 구조 또한 불안정했지만 1990년 선박 기술업체의 복원력 시험에 통과했다는 기사 보도가 있었다. 결국 12월 1일 해양 전문가로 구성된 합동 조사반의 발표에서 선박 구조에는 문제가 없으며, 정원 초과와 과적이 사고의 원인이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후 12월 13일 사건을 수사한 전주지검에서 초과 승선과 과적, 운항부주의, 방수구 부족 등이 사고 원인이었다고 밝혔고, 당시 언론에서는 정원 초과로 선박을 운행한 것을 준 지옥 운항으로 표현하기도 했었다. 배 안에서 표를 판매하여 승객 수를 정확히 파악하지도 못하는 등의 여객선 운용에도 문제가 있었다고 지적받았다. 그리고 해경의 초기 대응 또한 미숙했던 것으로 설명이 되어있다.

 

서해훼리호 해운 사건은 "선장 백씨가 가장 먼저 배에서 탈출해서 살아있다"는 언론의 오보가 있었다. 마지막에 설명할 세월호 사건의 선장이 가장 먼저 탈출한 것처럼 비슷한 상황이었으나 결국 사고 6일째 침몰된 선박에서 선장 백씨 등 3명의 사체가 발견되었다. 그들은 마지막 순간까지 배를 지켰었다.

 

 

4. 2014년 세월호 사건

 

침몰된 세월호를 인양해서 부두에 있는 모습 _출처 : 연합뉴스

 

앞선 3번의 큰 아픔의 대형 해운 사고의 아픔에도 결국 2014년 봄에 또다시 한국의 바다는 비운의 역대급 참혹한 세월호 사건이 발생된다. 당시 세월호는 안산시 단원고등학교 학생이 주요 탑승객으로 총 탑승인원 476명을 수용해서 인천에서 제주도로 가는 연안 여객선이었다.

 

2014년 4월 16일 오전 8시 50분경 세월호는 전남 진도군 조도면 부근 해상에서 전복된다. 세월호 사건은 국내 해양 안전 관리 실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비극적인 사건으로 평가되고 있다. 2008년 선박 연령 규제 완화로 일본에서 운항이 금지된 오래된 퇴역 선박인 세월호의 수입 운항이 진행되고, 사주인 유병언 일가의 부도덕한 경영과 선샤인 청해진해운의 부실한 선박 관리에 미흡한 안전 교육도 수면 위에 드러났다.

 

사고의 사실을 방치한 승무원, 항해사와 이준석 선장의 판단 착오와 늑장 대응, 그리고 구조를 위한 시간 지체와 가만히 대기하라는 안내 방송에 정부와 당시 관료들의 미진한 대응까지 모든 안 좋은 요인이 톱니바퀴처럼 돌아갔다.

 

 

세월호 전체 탑승자 수 476명

사망자 299명
(단원고 학생 248명, 교사 10명)

실종자 5명
(단원고 학생 2명, 교사 1명)

생존자 172명
(단원고 학생 75명, 교사 3명)

 

 

침몰 사고 생존자 172명 중 절반 이상은 해양경찰보다 약 40분 늦게 도착한 어선 등 민간 선박에 의해 구조되었고, 가장 가슴 아팠던 것은 사망자의 90%가 같은 학교 소속이며 83%가 미성년자로 안타까움과 공분이 매우 컸던 대한민국을 울리고, 격분을 했었던 희대의 사건이었다.

 

현재까지 3000톤급 이상 연안여객선에는 선박용 블랙박스 VDR 설치가 의무화되는 등의 교신, 자동 항해, 조타, 도어 개폐, 항행 장치 조작 기록 등 선박 운항에 관련된 자세한 기록으로 사고 방지와 발생 후 상황도 대비하는 노력은 다양하게 시도되고 있지만 아직도 노란 리본의 이미지가 많은 이들의 가슴속에 남아 대한민국 국민들의 가슴 아프고, 쓰라린 기억으로 남아있다. 

 


마지막 세월호 사건은 내가 살면서 잊히지 않는 사건이다. 당시 나는 회사 운영 중 사업 확장으로 뮤지컬팀을 기획, 준비해서 정확히 2014년 4월 16일 경주현대호텔 컨벤션홀에서 첫 출연 공연을 하고 있었다.

 

세월호 사건 오보 사건 당시 뉴스 장면 _출처 : 나무위키

 

모든 공연을 마치고, 배우들과 저녁식사를 하면서 참혹한 세월호 사건 뉴스 보도가 되는 것을 보았고, 여배우들은 어떡하냐고 하면서 걱정을 했었다. 침묵하게 식사를 하던 도중 뉴스 오보까지 생생히 기억한다. 구조팀이 출동해서 단원고 학생 338명을 전원 구조했다는 뉴스 오보(2014년 최악의 오보 사건)였다.

 

바다에서 발생되는 해양 사고는 깊은 바다 한가운데에서 발생되어, 육지에서 발생되는 사건과는 차원이 틀리다. 빨간 소방차와 소방관도 없으며, 주위 사람도 없어며, 도로 또한 없다. 주위는 차갑고 푸른 바다만 존재할 뿐이다.

 

이런 해양사고 동향과 해상교통안전관리, 선원 및 선박 관리 등 해양 안전과 관련되어 다양한 현안과 개선 방안을 논의하면서 해양 교통 종사자들의 의식 개선 노력이 꾸준히 항상 필요하다. 책상에서 이루어지는 탁상공론적 방안보다 해양에서의 현장에 실제로 적용이 가능한 연구가 절실하다.

 


글 참고 유튜브 영상 : 슬립루팡 TV

https://youtu.be/cwzPYhLE0x8

 

글 참고 뉴스 기사 : 연합뉴스 - 잊힌 '창경호'의 비극, 되풀이되는 참사

https://www.yna.co.kr/view/AKR20180107026000013?input=1195m 

 

글 참고 뉴스 기사 : 제주도민일보 - 남영호 침몰 이후 44년 만에 최대 해양 참사로 기록될 듯

http://www.jejudom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9877 

 

글 참고 뉴스 기사 : 한국경제 - 세월호 진상규명할 것 천명에... 서민 4년 전 기사 아니야

https://news.naver.com/main/read.naver?oid=015&aid=00045317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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