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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대통령 선거가 이제 코앞에 다가왔다. 여기에서 대선 출마를 얼마 전에 선언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파평윤씨라는 이유로 파평윤씨에 대한 전 국민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나도 윤 씨와는 연관이 있는 인물이다. 어머니께서 윤 씨 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성씨 파평윤씨에 대해서 알아보고, 파평윤씨 소정공파의 홈페이지에 있는 내용을 간략하게 소개해보려 한다.

 


※ 2022년 3월 10일 목요일 update

 

2022년 3월 9일에 펼쳐진 제20대 대통령 선거 투표가 치뤄지고, 2022년 3월 10일 새벽 3시경 선관위에서 2번 윤석열 후보가 "유력"이라는 표기가 되면서 결과는 윤석열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이 되었다. 2위를 한 이재명 후보와의 표차이는 247,077표로 아주 아슬아슬하게 대통령에 당선이되었다. 득표율로 보면 0.8%의 차이로 대통령에 당선이 되었다.

 

윤석열 예비 대통령은 이제 곧 대한민국의 20대 대통령이 된다. 블로그에 검색 유입이 되는 것을 감안해서 대통령 선거의 흔적과 기록을 남겨둔다.

 


  1. 한국의 성씨 : 파평 윤씨 (坡平 尹氏)
  2. 관향 : 경기도 파주시 파평면
  3. 시조 : 윤신달(尹莘達)
  4. 집성촌 : 경기도 파주시 법원읍,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봉암리, 충청남도 공주시 탄천면·논산시 노성면, 전라남도 함평군 해보면, 경상북도 예천군·구미시, 인천광역시 남동구 장수동, 황해도 송화군·황주군·신천군
  5. 인구수 : 770,932명(2015년) | 국내 9위

 

파평윤씨-한국의성씨-유명한사람-글로-알아보자

 

 

 

파평 윤씨 - 역사적 인물 및 유명한 인물

 

 

1. 역사적 인물

1) 윤관 : 고려 중서 문하성 문하시중, 별무반 행영대원수

 

2) 윤봉길 : 건국훈장 대한민국장 수훈자, 대한민국 독립유공자, 공간공파 32대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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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 윤봉길

 

3) 윤언이 : 고려 중기의 문신, 칭체건원 찬성자

4) 윤인첨 : 고려 중기의 문신이자 무신, 배향공신, 對 조위총 임시 군단 원수

5) 윤임 : 조선 중기의 문신. 장경왕후의 오빠로 인종에게는 외숙부가 되며 대윤(大尹)의 거물. 을사사화 때 숙청당했다.

6) 윤증 : 조선의 학자. 서인 소론의 영수다. 자(字)는 자인(子仁), 호는 명재(明齋)·유봉(酉峰), 시호는 문성(文成). 윤선거의 아들이자 성혼의 외증손이 된다.

7) 윤필상 : 조선 전기의 유학자이자 문신이며 훈구파의 구심점. 조선의 영의정

8) 문정왕후 : 조선 왕비, 중종의 제2 계비이자 인종의 계모, 명종의 모후. 시호는 성렬인명문정왕후(聖烈仁明文定王后)

9) 장경왕후 : 조선 왕비, 중종의 첫 번째 계비. 시호는 숙신명혜선소의숙장경왕후(淑愼明惠宣昭懿淑章敬王后) 인종의 친어머니이며, 월산대군의 처조카이고 박원종의 외종질이자 성종의 며느리이다

10) 정현왕후 :조선 왕비, 시호는 자순화혜소의흠숙정현왕후(慈順和惠昭懿欽淑貞顯王后) 조선 제9대 국왕 성종의 3번째 왕비이자, 조선 제11대 국왕 중종의 모후이다. 또한 조선의 역대 왕비 중에서 운이 좋게 후궁 출신으로 중전이 되었다가 왕대비가 된 유이한 인물이다.

11) 정희왕후 : 조선 왕비, 존호는 자성흠인경덕선열명순원숙휘신혜의신헌정희왕후 (慈聖欽仁景德宣烈明順元淑徽愼惠懿神憲端良齊敬貞熹王后) 조선 제7대 국왕 세조의 왕비이며 세종대왕과 소헌왕후의 둘째 며느리. 덕종, 예종의 어머니이자, 월산대군과 성종, 제안대군의 할머니, 소혜왕후, 장순왕후, 안순왕후의 시어머니다. 또한 연산군과 중종은 정희왕후의 증손자이다

12) 폐비 윤씨 : 조선 제9대 왕 성종의 계비이자, 제10대 왕 연산군의 친어머니이다. 아들 연산군이 즉위 후에 올린 시호는 제헌왕후(齊獻王后)이다. 중종반정 이후 삭탈(削奪)되었다. 묘호는 회묘(懷墓)이다.

13) 윤원형 : 조선 전기의 간신 영의정 역임. 문정왕후의 남동생이자 정난정의 남편이다.

14) 윤흥신 : 조선 중기의 무관으로 임진왜란 발발 당시 다대포 첨사

 

15) 윤동주 : 대한민국 독립유공자,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조선인 시인이자 독립운동가 20세기 중반 국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한 명으로, 조선 독립의 문학적 상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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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 윤동주

 

16) 윤상원 : 대한민국의 민주운동가, 5. 18 민주화운동, 임을 위한 행진곡 광주 시민군

 

 


 

2. 현대의 유명한 인물

 

1) 윤건영 : 대한민국의 교육자, 정치인

2) 윤공희 : 한국 가톨릭 교회의 성직자. 세례명은 빅토리노. 2020년 현재 한국 가톨릭 생존 주교 중 최고령 인물로 기록

3) 윤관석 : 대한민국 제19~21대 국회의원. 더불어민주당

4) 윤길현 : 前 롯데 자이언츠, SK 와이번스의 투수

5) 윤도운 : JYP에서 데뷔한 5인조 밴드 DAY6와 유닛 Even of Day의 강아지. 팀 내 막내이며 포지션은 드럼

 

6) 윤도현 :한국의 록 음악 가수, 작곡가. 록밴드 YB의 보컬과 리더를 맡고 있다. 록의 불모지라 불리는 한국에서 가창력과 대중성 둘 다 인정받는 보컬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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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 윤도현 _ 출처 인스타그램

 

7) 윤동환 :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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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 윤동환

 

8) 윤두준 : 아이돌 그룹 비스트의 전 멤버이자 현 하이라이트의 리더, 보컬 및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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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 그룹 비스트 전 멤버 윤두준

 

9) 윤미라 : 여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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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윤미진 : 대한민국 여자 양궁의 신궁의 계보를 잇는 전직 양궁 선수

11) 윤미향 : 전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을 역임.

12) 윤민수 : 가수, 프로듀서, 방송인이자 쉬운 노래도 어렵게 부르는 데에는 도가 튼 가수

가수 윤민수

 

13) 윤박 : 배우

 

14) 윤보라 : 4인조 걸그룹 씨스타와 걸그룹 유닛 씨스타19의 메인 래퍼, 메인 댄서 출신의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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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그룹 씨스타 가수 - 윤보라_출처 인스타그램

 

15) 윤서인 : 매국노, 대한민국의 만화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 유튜버이다. 날조를 주요 장르로 하고 있다

16) 윤석권 : 前 쌍방울 레이더스의 외야수.

17) 윤석민 : 前 KIA 타이거즈의 우완 투수, 동명이인 前 두산 베어스, 넥센 히어로즈, kt wiz, SK 와이번스의 내야수

 

18) 윤석열 : 대한민국의 전 검사, 제43대 검찰총장을 지냄. 문재인 정부에 중용되어 적폐청산 수사를 지휘하고 서울중앙지검장, 검찰총장 등을 역임하며 승승장구하였으나, 조국 사태를 기점으로 윤석열 검찰총장 정직 사건을 거치면서 문재인 정권에 대한 수사를 진행하였고, 이를 기점으로 문재인 정부 및 더불어민주당과는 돌이킬 수 없는 관계로 치닫게 되었다. 현재는 차기 대권주자 지지율 여론조사에서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양강을 형성하는 양상이 오랜 기간 지속되고 있으며 야권에서 가장 강력한 차기 대권주자로 꼽히고 있는 인물이다.

 

2022년 3월 9일에 치뤄진 제20대 대통령 2번 후보에서 3월 10일에 총 득표수 16,394,815표, 2위인 이재명 후보와 득표율 0.8%의 차이로 아슬아슬하게 대통령에 당선이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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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검찰총장 / 제20대 대통령 - 윤석열

 

19) 윤석금 : 기업인. 웅진그룹 창업주 겸 회장-세일즈맨에서 그룹사 회장이 된 인물

20) 윤석중 : 한국 아동문학을 대표하는 대한민국의 시인이자 아동문학가이며 대한민국 초대 방송위원장

21) 윤성민 : 군인(예비역 육군 대장), 반란군의 정권인 5공화국에서 국방부 장관, 합동참모의장, 제1야전군사령관을 역임

22) 윤성빈 : 대한민국의 스켈레톤 선수이며,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혜성같이 등장하였다. 2012년 스켈레톤에 입문하여 3년 8개월 만에 월드컵 우승을 차지했고, 5년 5개월 만에 세계 랭킹 1위까지 올랐다. 이어서 3개월 후 대한민국에서 열린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서는 입문한 지 5년 8개월 만에 아시아 최초의 썰매 종목 금메달을 차지

23) 윤소정 : 영화감독 윤봉춘의 딸이자 시나리오 작가 윤삼육의 여동생으로, 고등학생 때인 1961년 연극배우 활동을 시작하다가 이듬해인 1962년에 KBS 성우로 활동하게 되었다. 드라마와 영화에도 간간히 나왔지만, 주로 연극에 주력하여 "연극계의 대모"로 불렸다

24) 윤승운 : 《맹꽁이 서당》의 만화가. 순천대학교 만화 예술학과 전임 강사 겸임

 

25) 윤시윤 : 배우. 원래 이름은 윤동구였으나, 경기대학교에 들어가면서 윤시윤으로 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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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 윤시윤 (개명 전이름 윤동구)

 

26) 윤여정 : 영화배우이자 탤런트. 한국 영화사 최초로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연기상을 수상하며 세계 영화사에 족적을 남긴 대배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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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배우 - 윤여정

 

27) 윤은혜 : 가수 겸 배우. 5인조 걸그룹 베이비복스의 멤버이며, 막내, 서브보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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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겸 배우 - 윤은혜

 

28) 윤재혁 : YG엔터테인먼트 소속 12인조 보이그룹 트레저의 멤버

29) 윤정한 : 13인조 보이그룹 세븐틴의 멤버. 보컬팀 소속이며 서브보컬 포지션

30) 윤종훈 : 배우

31) 윤주경 : 정치인으로 독립운동가인 윤봉길 의사의 친손녀. 제21대 국민의힘 국회의원

 

32) 윤형빈 : 코미디언. 방송인. 2014년 종합격투기 데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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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맨 - 윤형빈

 

33) 윤호중 : 정치인. 현재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이자 4선 국회의원으로서, 지역구는 경기도 구리시, 소속 정당은 더불어민주당

34) 윤희숙 : 경제학자 출신 정치인. 국민의힘 소속 제21대 국회의원

 

 

 

파평 윤씨에 대해서 알아보자 - 역사적 사료

 

 

1. 파평윤씨의 개요

 

경기도 파주시를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 경기도 파주는 본래 고구려 장수왕 때 '파해평사현'이라 불렸고 신라 경덕왕이 지금의 이름인 파평현으로 고쳤다. 조선 태조 때 서원군과 파평현을 병합하여 원평군이라 하였다. 1461년 세조비 정희왕후의 관향이라 하여 파주목으로 승격하였고, 1895년 군이 되었다.

 

파평 윤씨의 시조는 윤신달(尹莘達)인데, 훗날 태조 왕건을 도와 후삼국을 통일하고 고려 창업에 공을 세워 삼한벽상공신(三韓壁上功臣)에 올랐다. 윤신달의 5세손에는 여진족을 정벌하고 동북 9성을 쌓은 윤관이 있다. 그는 고려 선종 때 합문지후와 좌사낭중을 지내고, 여진정벌에 원수가 되어 17만 대군을 이끌고 출전, 함주와 영주 등 9지구에 성을 쌓아 침범하는 여진족을 평정하였다. 그 공으로 벼슬이 수태보 문하시중 판병부사 상주국 감수국사에 이르렀고, 7형제를 낳아 가세를 크게 일으켰다. 그래서 파평윤씨에서는 윤관을 중시조로 삼고 있다. 파평 윤씨 족보에 따르면 시조 윤신달부터 5세손 윤관까지 전부 단계로 내려오고 있다. 즉 윤관은 5대 독자이며 모든 파평 윤씨는 윤관의 후손이라는 말이 된다. 시조로부터 윤관까지 세계를 내려가면 윤신달-윤선지-윤금강-윤집형-윤관이 된다. 파주라는 명칭파평 윤씨 가문 때문에 생긴 명칭이다.

 

세조는 계유정난 이후 점차 시국이 안정됨에 따라, 정변 때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 세조비 파평 윤씨(정희왕후)의 고향인 원평도호부를 파평 윤씨에서 '파'자를 따와 파주목으로 승격시켰다.(원평은 서원과 파평을 합친 말이다.) 그리고 할머니 원경왕후(여흥 민씨)의 고향인 여흥 또한 여주목으로 승격시켰다. 윤관의 아들 7형제는 다시 아랫대로 내려가면서 수십 파로 분파되었다. 윤관의 장남 윤언인의 손자 윤위는 남원에서 일어난 반란을 진압한 공로로 남원백에 봉해졌다. 그 이후 후손들을 남원 윤씨라고 불렀다. 윤위의 손자 윤돈 또한 함안에서 난을 진압하여 함안백으로 봉해졌다. 그 이후 윤돈의 장남 윤희보의 후손들은 함안 윤씨로 분파되었고 윤돈의 나머지 세 아들의 후손들은 남원 윤씨로 세계를 이어갔다.

 

현재에 이르러 이 두 성씨는 유래가 명확하므로 각각 파평 윤씨 함안백파남원백파로 합본되었다. 연산군의 어머니로 유명한 제헌왕후(폐비 윤씨)가 함안 윤씨이다. 남원 윤씨로는 효종-숙종 연간 남인의 거두였던 백호 윤휴가 있다. 윤관의 5남 윤언식의 후손들은 윤언식의 증손자 윤은형이 덕산군에 봉해짐에 따라 덕산군파로 불려지고 있다. 이외 나머지 파평 윤씨의 분파인 문정공파(文定公派), 신녕군파(新寧君派), 대언공파(代言公派), 봉록군파(奉祿君派), 판서공파(判書公派), 야성군파(野城君派), 전의공파(典儀公派), 소정공파(昭靖公派), 원평군파(原平君派), 소도공파(昭度公派), 판도공파(版圖公派), 소부공파(少府公派), 태위공파(太尉公派) 등은 6남 윤언이의 후손들이다. 이들 가운데서 후손인 판도공파(版圖公派)와 소정공파(昭靖公派)에서 많은 인물을 배출하였다.

 

파평 윤씨의 대부분(80%)은 소정공파(昭靖公派)와 판도공파(版圖公派)로 다른 성씨 본관의 파에 비해 한쪽 파(派)에 많이 쏠려 있는 편이다. 후손이 적은 파도 있지만 일부 파의 대부분이 북한에 거주한 영향도 있다. 2000년 통계청이 발표한 바에 따르면, 모두 22만 1,477가구 총 71만 3,947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인구가 많은 만큼 전국적으로 많이 분포하고 있지만, 충청도와 경상도 쪽에 인구 거주 밀도가 높다. 반면 전라도에서는 생각보다 많이 살지 않는다. 전라도에 사는 윤씨는 남원을 본관으로 하는 남원 윤씨나 해남을 본관으로 하는 해남 윤씨인 경우가 많다. 해남 윤씨는 파평 윤씨 다음으로 2위, 남원 윤씨는 3위. 참고로 4위는 해평 윤씨인데 해평 윤씨는 같은 성자을 공유할 뿐, 파평 윤씨와는 시조부터가 다른 이본이다. 특히 전라남도에는 파평 윤씨보다 해남 윤씨들이 더 많다. 다만 남원 윤씨는 모두 파평 윤씨에서 갈라져 나왔기 때문에 파평 윤씨 문중에서는 범 파평 윤씨로 간주하기는 한다. 이들 본관 성씨를 가진 이가 파평 윤씨로 입적할 경우에는 대개 입적이 아닌 환적으로 간주된다. 해남 윤씨는 파평 윤씨와 일절 관련성이 없다.

 

 

 

2. 파평 윤씨의 번영

 

파평 윤씨는 조선시대 들어와 가문이 크게 번성하면서 명문 세도가의 반열에 올랐다.(이미 고려 시절부터 문벌 귀족 15가문을 시작으로 권문세족 안에서도 재상지종 9가문의 명문가였다.) 파평 윤씨는 왕비를 가장 많이 배출한 성씨로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5명의 왕비를 배출했으며, 수많은 과거 급제자와 고관대작들이 나왔다. 그중 중종 대에서는 파평 윤씨에서 2명의 왕비(장경왕후와 문정왕후)가 나와 한 가문에서 대윤과 소윤으로 갈려 싸우는 비극을 연출하기도 했다.

 

판도공파의 파조는 윤승례인데, 그는 시조 윤신달의 13세손으로 윤척의 아들이다. 윤승례의 아들이 세조의 장인인 윤번이고, 윤번의 딸이 정희왕후(세조 비)이다. 판도판서공파는 윤승례의 아들 대에서 제학공파 부윤공파 정정공파로 갈라진다. 그중 정정공파에서 2명의 왕비가 나와 대윤과 소윤의 싸움이 빚어졌다. 윤승례의 아들 윤번은 세조의 장인이고, 윤번의 맏아들인 윤사분은 우의정, 둘째인 윤사윤은 예조판서, 셋째인 윤사흔이 우의정이 되어 형제간에 정승을 지냈으며 7∼8대에 걸쳐 국구부원군과 공신부원군, 정승, 판서와 당상관들이 배출되어 조선 시대 최고의 가문으로 성장하였다.

 

하지만, 호사다마라는 말이 있듯이 윤사윤과 윤사흔 두 집안에서 각각 중종의 왕비(장경왕후, 문정왕후)가 배출되어 왕실 및 왕위 계승을 놓고, 대윤과 소윤으로 갈라져 싸우는 비극이 일어났다. 윤사윤의 손자인 윤여필의 딸이 중종의 제1 계비인 장경왕후이고, 그녀의 오빠가 윤임이다. 장경왕후는 세자(인종)를 낳고 곧바로 죽었다. 장경왕후의 뒤를 이어 윤사윤의 동생인 윤사흔의 증손 윤지임의 딸이 제2 계비로 책봉되어 문정왕후가 되었다. 먼 친척뻘인 고모와 질녀가 같은 왕의 왕비가 된 것이다. 문정왕후는 4명의 공주를 낳은 끝에 어렵사리 아들 명종을 낳았다. 그 뒤로 그녀는 남동생 윤원형을 끌어들여(소윤) 장경왕후의 오빠 윤임을 중심으로 한 일파(대윤)와 정치적 암투를 벌였는데 이를 대윤과 소윤의 싸움이라고 한다. 대윤과 소윤의 싸움은 명종이 왕위를 계승함으로써 소윤의 승리로 끝났으나, 소윤 역시 문정왕후가 죽자 몰락하였다. 결국 대윤과 소윤의 싸움은 파평윤씨 판도공파의 몰락을 가져오는 계기가 되었다.

 

소정공파는 윤승례의 형 윤승순의 아들인 윤곤의 후손이다. 윤승순은 공민왕 때 요승인 신돈의 살해를 모의하다 발각되어 유배되었다가, 신돈이 주살된 후 풀려나 응양군 상호군이 되어 왜국의 침입을 막아냈다. 창왕 때는 권근과 함께 명나라에 사신으로 가, 명나라의 명에 의해 공양왕을 즉위케하였고, 판개성부사를 지냈다. 윤곤은 제2차 왕자의 난 때 이방원(李芳遠, 태종)을 도와 좌명공신에 책록 되고 이조판서를 지냈다. 그의 손자 윤호는 성종의 장인으로서 딸이 성종비인 정현왕후(貞顯王后)이다. 그 후 그는 돈령부영사를 거쳐 우의정에 이르렀다. 윤곤의 후손 중에는 성종 때 영의정을 지낸 윤필상이 있다. 그는 문종 때 추장문과에 급제했다. 이시애의 난에 도승지로 왕명을 신속하게 처리하여 우참찬에 특진하였다. 성종 때 영의정에 오르고 부원군에 봉해졌으나, 연산군의 생모인 폐비 윤씨의 폐위를 막지 못하였다는 죄로 진도에 유배되고 사약을 받았다. 그의 증손인 윤현은 명종 때 호조판서를 지내고, 선조 때 사은사로 명나라에 다녀온 뒤 돈령부영사에 이르고 청백리에 녹선되었다. 이밖에 소정공파의 윤사로는 세종대왕의 딸 정현옹주와 결혼하여 영천군에 봉해지고, 세조 즉위년 좌익공신에 책록되고 좌찬성, 중추부영사에 이르렀다. 파평 윤씨 출신 중 일제강점기에 작위를 받은 사람은 없다. 조선귀족 명단을 살펴보면 종종 윤씨가 눈에 띄기는 하나 파평인은 아니다.

 

파평 윤씨가 윤씨 중 제일 인구가 많다 보니(전체 윤씨 중 약 75%) 좋은 쪽이던 나쁜 쪽이던 윤씨라면 무조건 파평 윤씨로 간주되는 경우가 많다.  후손으로서 자부심을 가질 일이기는 하나, 엄밀히 따져보면 조선 초, 중기와 달리 후기에는 가문의 영향력이 떨어졌던 것이 주된 이유가 아닌가 한다. 아무래도 당시에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면 나중에 작위를 반납하는 한이 있더라도 어떻게든 작위를 받았을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하버드 대학교 에드워드 와그너(Edward Willett Wagner) 교수와 전북대학교 송준호 명예교수가 조선 시대 과거 급제자들의 출신 배경 및 그 행적과 업적을 종합적으로 추적한 와그너-송 프로젝트에 따르면 조선 시대 과거 급제자들 중 전주 이씨, 안동 권씨 다음으로 많은 과거 급제자를 배출했다고 한다. 참고로 한국학 중앙 연구원에서 운영하는 한국 역대인물 종합정보 시스템에 따르면,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는 전주 이씨 868명, 안동 권씨 366명, 파평 윤씨 346명(함안/남원 윤씨 포함 424명)이다.

 

 

 

3. 파평 윤씨의 현대 이야기

 

윤창중이 박근혜 정부 참여에 대한 자신의 의사를 번복하면서 윤봉길 의사의 존함을 '문중 할아버지' 운운하며 언급하여 물의를 일으킨 적이 있다. 당시 윤봉길 의사 유족 측에서 상당한 불쾌감을 보였는데 이는 당연한 것이다. 일단 윤봉길 의사는 해당 인물의 문중 할아버지라고 하기가 어렵다. 각 집안마다 경우가 다르겠지만, 보통 문중 할아버지라고 하면 본인의 직계 조상이거나, 촌수가 좀 있더라도 비교적 가까운 선대에서 분파되어 최소한 시제 정도는 같이 지내는 집안에서 본인보다 최소 두 항렬 위인 사람을 말한다.

 

윤봉길 의사는 판도공 윤승례의 후손이고, 윤창중은 판도공의 조카인 소정공 윤곤의 후손이다. 둘 다 여말선초 사람이므로 아무리 적게 잡아도 최소한 17대는 내려왔을 것이다. 촌수로 아무리 적게 잡아봐야 34촌 정도 예상되지만 실제로는 그 이상이 될 가능성이 훨씬 높다. 보통 이런 경우에는 누가 굳이 윤봉길 의사의 후손이냐고 물어봐도 '같은 파평 윤문이지만 아주 오래전에 분파되어 현재 왕래는 없습니다.' 정도로 대답하는 것이 맞다. 실제로 윤봉길 의사의 직계 후손이라 하더라도 공적인 자리에서 조상의 함자를 함부로 언급하는 것은 후손의 도리가 아니다. 전통을 준수하는 집안에서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본인의 잘못된 행실로 인하여 조상 얼굴에 먹칠을 하는 것이다.

 

조선 후기로 들어서면서부터 의미가 많이 훼손되었지만, 집안에서 자꾸 조상의 행적 운운하는 것은 그것을 자랑으로 삼고 어디 가서 이득을 취하라는 것이 아니라, 평소 몸가짐을 바로 해서 이런 훌륭한 조상들 이름에 먹칠하지 말라는 것이다. 반대로 조상의 행적을 왜곡하는 것 또한 철저히 경계한다. 조상 얼굴에 금칠하려다가 똥칠한다는 말이 있다. 물론 자손 된 입장으로서는 좋은 점만 기록에 남기고 싶어 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이런 것도 정도가 있다. 가령 공이 있다면 이를 세세히, 기왕이면 좋은 쪽으로 기록하고 과가 있다면 완곡한 표현을 쓰거나 '오해로 공을 모함하는 사람이 있어 죄를 받았다' 정도로 언급을 할 수는 있다. 하지만 하지도 않은 고위 관직을 역임했다고 하거나, 과거에 급제하지도 않았는데 급제했다고 하는 등 사실을 왜곡하는 것은 오히려 조상을 모욕하는 짓이다. 이는 다시 말하면 '나는 과거에 급제하지 못한 조상이 부끄럽기 때문에 과거에 급제했다고 왜곡했다'라는 의미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관점에서 보면, 조상은 내가 이 세상에 있게 한 그 자체로 이미 공경을 받을 존재인 것이지 무슨 권력이 있었기 때문에, 유명한 분이었기 때문에 모셔야 되는 것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자기 집안과 전혀 왕래가 없던 사람이 본인의 정치적 소신을 바꾸는 핑계 중의 하나로 직계 할아버지 함자를 언급하는 것은, 후손 된 입장에서는 정말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다.

 

 

 

파평 윤씨 - 소정공파

 

 

1. 파평 윤씨 시조 설화

 

용연(龍淵:일명 가연)은 경기도 파주시 파평면 눌로리에 있으며, 태고적부터 지하수가 솟아나는 천연의 연못이다. 예부터 종중(宗中) 준설한 것으로 보이나 기록(記錄)은 찾을 수 없다. 근대(近代)에는 서기 1900년 강화문중(江華門中)에서 준설하고 “파평용연(坡平龍淵)”이라는 비석(碑石)을 세웠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6.25 동란 당시 크게 훼손되어 1972년 3월에 문정공파(文定公派) 종중(宗中)에서 “파평윤씨 시조 발상지 비(坡平尹氏 始祖 發祥址 碑)”를 새로 새겨 건립하였다.

 

연못 주위는 초장(草場)이었는데, 1976년 3월에 태위공파(太尉公派) 예산종중(禮山宗中)에서 수양버들 150株, 은행나무 6株, 벚나무 5株를 식수하였다. 예부터 “윤씨연못”으로 공칭(公稱)되어 왔으나 세부 측량 당시에 신고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국유(國有)로 편입되어 있었다. 그때문에 일정(日政) 당시에 坡州邑에 거주하는 노(魯) 모씨가 개답(開沓)하기로 허가를 받은 것을 발각(發覺)하고, 우리 宗中에서 소송을 제기하여 승소(勝訴)한 결과 지적대장에는 “윤씨 연(尹氏 淵)”이라고 표시되어 있었던 것을 1977년 1월 14일 大宗會에서 宗中 所有로 소유지 이전등기를 완료했으며, 면적은 2,531평이다.

 

전설에 따르면 용연에는 용인이 살고 있어 연못가가 불결해지면 뇌성이 진동하고 폭풍우가 친다고 전한다. 始祖에 관한 전설이란 신라 진성왕 7년(서기 983년) 음력 8월 15일 용연 위에 갑자기 구름과 안개가 자욱하게 끼고 요란한 천둥과 번개가 치면서 용연 위에 한 개의 옥함이 떠 올랐다. 그러자 마을 사람들은 이를 기이하게 여기고 고을 태수에게 고하여 태수가 연못가에 나가보니, 용연 연못에 떠오른 옥함이 연못 가운데로 밀려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날이 저물 무렵 연못가에 빨래를 하던 한 노파가 옥함이 다시 떠오르는 것을 보고 이를 건져내어 열어보니 그 속에는 오색의 우모(羽毛)에 쌓여 있는 어린 사내 아기가 있었다.

 

찬연한 서기를 발하면서 옥함에서 나온 사내 아기는 융준용안(隆準龍顔)으로 코가 우뚝하여 용의 상을 닮았으며, 양쪽 어깨에는 붉은 사마귀가 있어 일월(日月)을 상징하고 좌우 겨드랑이에는 비늘이 81개가 돋아 있었으며, 발에는 일곱 개의 검은 점이 있어서 북두칠성의 형상과 같았고 온 몸에는 광채가 솟아서 눈을 부시게 하였으니 이 아기가 파평 윤씨의 시조가 되는 어른이 시었다.

 

이러한 탄생 설화를 가진 始祖 태사공께서는 파주산 아래에 사시면서 학문과 무예를 닦으셨는데 파평산 마루에 말이 달릴 수 있는 길을 닦고 궁마 훈련을 하시었다. 파평산 마루에서 말을 달리시며 무예를 연마하시던 곳이 치마대(馳馬臺)라고 하는데 지금도 태사공께서 길을 닦으셨던 석축의 일부가 남아 있다. 치마대에서 태사공께서 기마술을 연습하실 때에 애마가 죽었으므로 작은 철마를 만들어 그곳에 두었는데 후일 어떤 철공이 그것을 훔쳐 갔다가 그만 즉사를 했고, 그때 함께 갔던 사람이 두려운 생각이 나서 흙으로 구운 작은 말을 가져다 놓았다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으나 지금은 흔적이 없다.

 

태사공께서 학문을 닦으시던 금강사(金剛寺)도 지금은 형적이 없고 다만 그 사지만이 남아 있다. 태사공께서는 파주에서 임진강을 건너 개경을 내왕하실 적에 공이 강을 건너실 때에는 항상 강물이 갈라지며 홀연히 백사장이 드러나서 신발을 적시지 않고 강을 건너셨고, 송도에 있는 조정에 출사 하신 뒤에도 말을 타시고 파평면에 있는 사저에서 강 너머로 내왕하시는데 말의 빠르기가 나는 듯하였고, 강을 건널 때에는 물이 양쪽으로 갈라졌다고 하여 이를 두고 이곳을 ‘물결을 끊고 마시듯이 강을 건넌다’하여 여음진(如飮津)이라고 이름을 지었다가 음진(飮津)으로 고쳤는데 이것이 다시 후세에 음이 변하여 임진강이 되었다고 전한다.

 

또, 尹氏가 잉어를 먹지 않는 이유는 5세 문숙공(諱:瓘)께서 함흥 선덕진(咸興 宣德鎭) 광포(廣浦)를 건너서 적군을 추격하시다가 복병에게 포위를 당해서 위급한 지경에 있었는데, 척준경(拓俊京)이라는 부하 장수의 힘을 입어서 간신히 살아 나오시어 이십여 명의 부하들이 보호해서 포위망을 벗어나 돌아오시다가 광포에 당도했는데 해는 저물었고, 광포는 물이 들어와서 다리가 보이지 아니했다. 그 광포에 물이 없을 때에는 드문드문 다리를 놓고 건너 다니고, 물이 들어올 때에는 건너지 못하여 불통되던 곳인데, 그날은 물속으로 다리의 형체가 보이므로 간신히 건너왔는데, 쫓아오던 적군이 이 다리를 건너고 있을 때, 물속에 보이던 다리의 형체가 보이지 않아 적군이 물에 빠져 죽었다. 문숙공은 잉어 떼가 다리를 놓아 건너오셨다고 해서 도린포(都鱗浦)라 했고, 잉어가 공을 도와 드렸다 해서 윤씨들은 잉어를 먹지 않는다.

 

 

 

2. 파평 윤씨 소정공파 항렬표

 

소정공파 항렬표는 아래와 같다. 지금 대선 출마 선언을 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35대손 일수도 있다.

 

소정공 : 상호군파

30세손;진(鎭) 31세손;자,재(慈, 宰) 32세손;상,임(相,壬) 33세손;병,규(炳,揆) 34세손;중,갑(重, 甲) 35세손;석,봉(錫,鳳) 36세손;여,병(汝,丙) 37세손;식,령(植,寧) 38세손;섭,무(燮,茂) 39세손;재,범(載,範) 40세손;종,강(鐘,康)

 

소정공 : 구방파

30세손;화(禾) 31세손;자,영(滋,榮) 32세손;영,왕(榮,王) 33세손;혁,종(赫,鐘) 34세손;현,승(鉉,承) 35세손;한,동(漢,東) 36세손;근,렬(根,烈) 37세손;렬,기(烈,基) 38세손;준,호(埈,鎬) 39세손;수,택(洙,澤) 40세손;태,표(泰,杓)

 

소정공 : 장령공파

30세손;진(鎭)31세손;자(滋) 32세손;상(相) 33세손;병(炳) 34세손;중(重)35세손;석(錫) 36세손;여(汝)37세손;식(植) 38세손;섭(燮) 39세손;달(達) 40세손;종(種)

 

소정공 : 백천공파

31세손;영(永) 32세손;의(儀) 33세손:수(변)(水) 34세손;주(住) 35세손;희(熙) 36세손;기(基) 37세손;석(錫) 38세손;수(洙) 39세손;병(秉) 40세손;섭(燮)

 

소정공 : 영천부원군파

31세손;현(顯) 32세손:오(五) 33세손;석(錫) 34세손;원(源) 35세손:주(柱) 36세손;희(熙) 37세손;재(在) 38세손;용(鏞) 39세손;영(泳) 40세손;직(稙)

 

소정공;원평공파 32세손;상(相) 33세손;병(炳) 34세손;재(在) 35세손;석(錫) 36세손;영(泳) 37세손;모(模) 38세손;영(榮) 39세손;규(圭) 40세손;현(鉉)


글 참고 사이트 및 원문

 

파평윤씨 소정문회

 

www.yoonul.or.kr

https://namu.wiki/w/%ED%8C%8C%ED%8F%89%20%EC%9C%A4%EC%94%A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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