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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의 경제와 부의 품격은 시대에 따라 많은 변화를 가지게 된다. 잘 나가가던 나라가 갑자기 거지 나라가 된 사례도 있었고, 반대로 거지 국가에서 부자 국가로 된 사례가 있다. 오늘은 과거 가난한 국가에서 지금은 부자의 나라가 된 즉 환골탈태한 국가 TOP 10을 알아보는 시간을 가지겠다.

 

가난한나라-가난한국가-부자나라-부자국가-변화-사례-TOP10
가난한 나라에서 부자가 된 나라 TOP 10

 

 

TOP 10 순위 미리 보기

(자세한 내용을 보기 싫으면 그냥 순위만 알기....)

 

1위 - 룩셈부르크(Luxembourg)

2위 - 아일랜드(Ireland)

3위 - 스위스(Switzerland)

4위 - 노르웨이(Norway)

5위 - 싱가포르(Singapore)

6위 - 카타르(Qatar)

7위 - 대한민국(Korea)

8위 - 브루나이(Brunei)

9위 - 스페인(Spain)

10위 - 사우디아라비아(Saudi Arabia)

 

 

환골탈태로 부자가 된 국가 TOP 1 ~ TOP 3

 

 

환골탈태로 부자가 된 국가 1위 - 룩셈부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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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골탈태 부자 국가 1위 - 룩셈부르크 위치 _출처 : 구글지도

 

가난한 나라에서 환골탈태하여 부자의 나라가 된 특별한 국가는 룩셈부르크이다. 바다에 인접하지도 않고, 유럽 중앙 내륙에 있는 룩셈부르크는 유럽에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대공국(Grand Duchy)이다. 수도의 이름 또한 '룩셈부르크'이다.

 

19세기 초반까지 인구의 대부분이 농업에 종사를 하던 룩셈부르크는 당시 인구의 33%가 해외로 이주했을 정도로 국민들의 삶의 질은 형편없었다. 하지만 19세기 중반 철광석이 발견되고, 1876년 영국의 야금술이 도입되면서 룩셈부르크는 가난을 벗어나게 된다.

 

유럽의 철강 생산국이 되면서 룩셈부르크의 경제는 급성장하게 된다. 세계 대전의 위기도 있었지만 철강산업은 대체로 20세기 초중반 엄청난 경제성장을 이끌었다. 특이하게 국가적으로 1960년대 금융업을 육성해서 결실을 이룬다.

 

현재 룩셈부르크의 서비스업이 GDP의 87% 비중을 차지한다. 철강 산업이 아니라서 의아하지만 역시 스위스처럼 금융업 또한 엄청난 규모의 경제를 차지한다. 룩셈부르크의 금융산업 경쟁력은 런던과 취리히에 이어 세게 3번째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2021년 기준 1인당 GDP는 USD 131,302를 기록했는데 리히텐슈타인과 모나코에 이어 세계 3위를 랭크한다.

 

 

환골탈태로 부자가 된 국가 2위 - 아일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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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골탈태 부자 국가 2위 - 아일랜드 위치 _출처 : 구글어스

 

영국의 서쪽 아일랜드섬 대부분을 통치하는 서유럽의 섬나라 아일랜드의 수도는 '더블린'이다.

 

아일랜드는 1919년부터 1921년까지 영국으로부터 독립 전쟁으로 독립을 하게 된다. 국경이 폐쇄되면서 정치적으로는 독립을 하게 되었지만 내부 경제는 1979년까지 영국의 파운드 스털링과 페그 되었을 정도로 의존도가 높았다. 당시 아일랜드의 경제는 농업을 기반으로 해서 가난했다.

 

1932년부터 션 레머스가 보호주의를 도입하면서 더욱더 가난해진다. 1945년부터 1960년까지 당시 유럽 경제는 호황이었지만 아일랜드 경제는 반대로 흘러가서 수십만 명의 국민이 국가를 떠났다.

 

1958년 재무부 장관 휘태커는 아일랜드 경제를 개혁한다. 보호 무역을 종식하고, 경제 시스템을 농업에서 서비스 중심으로 전환해서 일자리 창출을 늘렸다. 이후 아일랜드는 영국 경제의 의존도를 낮추고, 1990년에 첨단 산업을 육성한다. 이런 장기적 경제 정책으로 부가 축적되면서 엄청난 경제 성장을 이룬다.

 

켈트 타이거로 불리는 아일랜드의 경제 호황은 1994년 ~ 2000년까지 매년 10%의 경제 성장을 보이고, 2000년대 초반과 2008년의 위기도 있었지만 꾸준한 외국인 투자 증가와 소비지출의 증가는 아일랜드의 경제를 탄탄하게 이끌고 있다. 2021년 기준 아일랜드의 1인당 GDP는 USD 102,394 달러로 세계 4위이다.

 

 

환골탈태로 부자가 된 국가 3위 - 스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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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골탈태 부자 국가 3위 - 스위스 위치 _출처 : 구글어스

 

중부 유럽에 위치한 헬베티아 연방 혹은 스위스는 연방제 공화국이다. 스위스의 수도는 '베른'이다. 영세중립국으로 알려졌으며 헌법상 수도는 따로 없지만 연방의회와 국제기구가 많이 있는 베른이 수도의 역할을 하고 있다. 특이하게 스위스는 유럽연합(EU) 국가가 아니다.  GDP 기준 세계 5위

 

산업지형으로 이루어진 척박한 지리적 환경과 적은 인구 그리고 농업 중심의 산업은 19세기 중반까지 스위스를 존재감 없는 국가로 낙인이 찍혀 있었다.

 

스위스는 금융업과 관광업으로 경제 개발의 기틀을 마련했다. 여러 부자 나라들의 석유 대박과 미국의 지원과는 조금 차별성이 있는 경제 기반의 성장을 한 케이스이다.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까지 스위스는 엄청난 노력으로 경제적 기적을 만든다.

 

중립국가의 위치로 세계 대전의 생산시설 피해에서도 피해 갔고, 독일부터 영국까지 유럽 각국에 무기를 수출하고, 외화를 벌어들인다.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에 경제의 저성장이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서비스 산업과 제조 산업이 두루 발달이 되어 국가의 부의 품격을 더 키우게 된다.

 

특히 은행을 중심으로 국가적 금융업을 비롯해서 제약산업, 시계산업, 관광업 등은 세계 최고 수준의 국가이다. 2021년 스위스의 1인당 GDP는 USD 93,515 달러로 세계 5위이다.

 

 

환골탈태로 부자가 된 국가 TOP 4 ~ TOP 6

 

환골탈태로 부자가 된 국가 4위 - 노르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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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골탈태 부자 국가 4위 - 노르웨이 위치 _출처 : 구글어스

 

북유럽 스칸디나비아 반도에 위치한 노르웨이의 수도는 '오슬로'이다. 입헌군주제 국가이며 원유 수출량이 세계 10위 수준의 산유국이며, EFTA(유럽 자유무역 연합) 회원국이다 특이하게 2021년 기준으로 11년 연속으로 민주주의 지수 1위를 랭크하고 있다. GDP 기준 세계 6위

 

20세기 초 노르웨이의 경제는 유럽 국가들 중에서 빈약했다. 이런 빈약한 경제를 타파하기 위해서 수력발전으로 에너지를 생산하는 국가 산업을 추진해서 경제적 향상의 가능성을 열게 된다. 이후 제2차 세계대전을 겪고 위기를 맞이했지만 미국의 대대적인 지원으로 다시 경제를 회복한다.

 

노르웨이 경제의 엄청난 사건은 1967년  북해에서 석유를 발견하게 된다. 이후 1971년부터 석유 매장량이 상당했던 유전 덕분에 노르웨이는 타이밍 좋게 오일쇼크로 유가마저 상승해서 상당한 외화벌이를 하게 된다. 이후 엄청난 경제력을 바탕으로 한 사회민주주의 개혁으로 경제적, 정치적으로 큰 화합으로 매우 탄탄하게 경제력을 쌓아간다.

 

수산업이나 해운산업 등의 세계적인 비자원분야 경제 산업도 존재하지만 석유 덕분에 노르웨이는 세계 최고의 복지국가로 성장한다. 2021년 노르웨이의 1인당 GDP는 82,244로 세계 6위이다.

 

 

환골탈태로 부자가 된 국가 5위 - 싱가포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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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골탈태 부자 국가 5위 - 싱가포르 위치 _출처 : 구글어스

 

 동남아시아의 싱가포르 섬에 위치한 도시국가인 싱가포르의 수도는 '싱가포르'이다. 도시국가의 특성상 국토 면적은 한국의 서울과 비슷하다. 인구는 2020년을 기준으로 약 584만 명이다. GDP 기준 세계 10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싱가포르는 혼란한 상태에서 공산주의자들의 폭동으로 내부적으로 더욱더 힘들게 된다. 그래서 1961년 말레이시아와 합병된다. 합병 이후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는 다양한 문제가 발생되어 갈등이 심했다. 결국 1964년 싱가포르에서는 유혈 사태가 발생된다.

 

결국 말레이시아 정부는 1965년 싱가포르를 다시 분리 독립시키는 결정을 한다. 붙은 혹을 다시 때어낸 이유는 실업률도 높았고, 인구의 1/3이 빈민가에 살고 있을 정도로 황폐화가 된 도시였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한국과 비슷한 처지인 듯.... 땅덩어리도 작고, 자원도 없어 미래는 더욱 불투명하게 된다.

 

도시 전체가 엉망일 때 '리콴유'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그는 부패를 제거하고, 세금을 줄이고, 노동조합도 허용하지 않았다. 이후 외국인 투자를 유치한다. 당시 영어를 공용어로 채택했고, 국민 전체에 대한 교육을 강화한다. 외국인 투자가 급증하고 중장기적 교육을 통해서 경제 성장을 이뤄낸다.

 

1970년대 이후 싱가포르의 경제는 매우 안정화되어 지금까지 경제는 더욱더 성장을 하며 세계적으로 기업 친화적이며 최고 수준의 개방 경제를 추구하고 있다. 2021년 GDP는 USD 66,263 달러로 세계 10위를 랭크한다.

 

 

환골탈태로 부자가 된 국가 6위 - 카타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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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골탈태 부자 국가 6위 - 카타르 위치 _출처 : 구글어스

 

서아시아, 중동에 위치한 카타르의 수도는 '도하'이다. 카타르는 이제 곧 세계적인 축구 축제인 2022년 월드컵이 개최된다. 자세한 국가 정보 및 월드컵에 대한 내용은 아래의 1월 14일에 포스팅한 글을 살펴보자.

 

2022.01.14 - [이슈] - 2022 카타르 월드컵 - 다양한 수식어가 붙는 월드컵이 피로 물들었다

 

2022 카타르 월드컵 - 다양한 수식어가 붙는 월드컵이 피로 물들었다

2022년 올해 11월 21일부터 12월 18일까지 세계인의 스포츠 축제 월드컵이 열린다. 개최국은 '카타르'이다. 하지만 월드컵이 피로 물들었다. 의 소식이 세계 곳곳에서 퍼져나가고 있다. 월드컵 개최

ksjkhy4539.tistory.com

 

1916년 영국의 식민지가 된 카타르는 당시 수산업 중심의 경제로 매우 가난한 나라였다. 당연히 국민들의 생활 여건도 최악이었다.

 

1930년부터 석유 탐사를 시작해서 1940년 두칸 유전에서 석유가 발견되면서 최빈국 카타르의 변화의 바람이 분다. 2차 세계대전으로 탐사가 잠시 중단되기도 했지만 1949년부터 본격적인 석유 생산이 되어 사우디아라비아의 사례처럼 국가 전체에 오일머니가 엄청나게 들어오게 된다.

 

갑자기 넘쳐나는 재력으로 1950년~1960년의 카타르 경제는 급성장하고, 국민들의 생활 수준이 향상된다. 이후 1971년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하고 나서 산업기반 시설과 사회적 인프라를 더욱 강화시킨다.

 

1970년대 오일쇼크로 카타르의 자원 경제는 절정에 이른다. 1980년대에는 낮은 유가로 경제 침체를 맞이하기도 했다. 이후 1990년대 중반 이후로 카타르 경제는 반등하게 되고, 최근에는 석유와 함께 액화천연가스의 수출도 활발한 상태이다.

 

현재 자원 경제의 위험을 알고 나서 비자원 분야의 경제 다각화를 구상하고 있다. 2021년 기준 카타르의 1인당 GDP는 USD 61,791 달러로 세계 12위이다.

 

 

환골탈태로 부자가 된 국가 TOP 7 ~ TOP 10

 

환골탈태로 부자가 된 국가 7위 -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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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골탈태 부자 국가 7위 - 대한민국 위치 _출처 : 구글어스

 

우리가 살고 잇는 한국은 GDP 기준 세계 9위이다. 

 

1950년에 발생한 한국전쟁(6.25 전쟁)은 내부적으로 혼란한 한국 경제를 더욱더 빈곤하고, 거지처럼 만드는 지옥으로 급행열차를 타게 만들게 된다.

 

1961년 군사 쿠데타를 통해서 집권한 박정희 정부는 1962년부터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시작한다. 독재 정치 속에서 산업화의 초석을 가지게 된 것이다. 순수 한국 경제만 보면 엄청난 발전이 있었다.

 

당시 한국의 대기업들은 정부로부터 많은 특혜를 받으면서 벼락 성장을 이끌게 된다. 그래서 1970년대 대한민국 경제 성장률은 평균 약 9%, 1980년대에는 3저 호황에 힘을 얻어 약 9.7%의 경제 성장률을 기록한다.

 

1990년 말에 금융위기를 겪었지만 국제통화기금(IMF)의 경제 체질개선을 통해서 현재는 선진국으로 그 위상을 알리고 있다. 2021년 기준 한국의 GDP는 USD 35,196 달러였는데, 과거 1960년대 USD 158 달러와 비교를 하면 약 223배의 성장을 한 것이다.

 

 

환골탈태로 부자가 된 국가 8위 - 브루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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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골탈태 부자 국가 8위 - 브루나이 위치 _출처 : 구글어스

 

동남아시아의 유일한 전제군주제 국가인 브루나이의 수도는 '반다르스리브가완'이다. 아직 술탄이 모든 실권을 가지고 있고, 명목상 헌법과 정부가 있지만 이슬람교의 종교적 율법이 강한 왕가의 파워가 막강한 나라이다. GDP 기준 세계 125위

 

GDP 수준으로는 부자인 나라처럼 생각을 못할 수도 있지만 실상은 아니다. 20세기 초까지 브루나이는 고무를 수출하는 수준의 극심하게 가난한 나라였다. 하지만 1926년 세리아 강 근처에서 기름의 흔적이 발견되어 1929년 최초로 석유 시추에 성공을 하게 된다.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중에 일본에 점령당하기도 했지만 석유의 발견과 생산은 고무로 연명하는 브루나이 경제에 엄청난 파급을 가져다준다. 1950년~ 1960년의 기간을 지나면서 브루나이는 과거의 가난한 나라가 아니었다. 사회적 인프라가 업그레이드되고, 교육시스템 또한 선진화가 된다. 공중 보건 시스템도 깔끔하게 향상이 되기도 했다.

 

1960년대 액화천연가스 매장이 확인되고, 1970년 오일 쇼크로 유가가 상승하자 엄청난 외화를 벌어들이면서 더욱더 부를 축적하게 된다. 1984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이후에도 브루나이는 석유와 천연가스 자원으로 독자적인 경제를 꾸려간다. 현재 브루나이는 동남아시아의 최고 부자 나라이다.

 

추가적으로 브루나이는 주거, 교육, 의료 등의 복지 혜택은 북유럽 복지 시스템과 비교가 될 정도로 높은 수준이다.

 

 

환골탈태로 부자가 된 국가 9위 - 스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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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골탈태 부자 국가 9위 - 스페인 위치 _출처 : 구글어스

 

남유럽의 이베리아 반도와 북아프리카에 있는 국가인 스페인의 수도는 '마드리드'이다. 전성기 시절의 무적함대로 알려진 강력한 해양 국가이며, 영국이 해상력을 장악하기 전에는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알려진 대국이었다. GDP 기준 세계 13위

 

1930년대 발생된 내전으로 많은 인명 피해를 받은 스페인은 내부 경제를 초토화시켜버린다. 내전의 상처가 아물기 전에 제2차 세계대전의 추축국 친화적인 정책으로 종전 후에 마셜 플랜에서 제외되었고, 당시 프랑코 정부는 자급자족의 고립된 경제 포지션을 취하면서 힘든 나날을 보낸다.

 

1950년대 초까지 스페인 경제는 최악이었다. 약 20년간의 고행으로 프랑코 정부의 태도가 바뀌면서 미국과 외교적으로 관계 회복을 해서 대대적 지원을 받게 된다. 1961년에는 OECD 회원이 될 정도로 고립적 경제를 벗어나서 개방 경제를 펼쳤다.

 

이후 스페인 경제는 자유시장 경제화가 성공적으로 되어 산업화를 이룬다. 1960년부터 1974년까지 스페인의 경제 성장률이 일본 다음으로 높았다. 1970년대 오일 쇼크의 위기를 겪고, 2010년 전후로 공황 수준의 경제 침체도 있었지만 과거 독재 정치를 벗어난 민주주의 바탕의 안정은 경제 회복의 가능성을 이어갔다.

 

 

환골탈태로 부자가 된 국가 10위 - 사우디아라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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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골탈태 부자 국가 10위 - 사우디아라비아 위치 _출처 : 구글어스

 

아라비아 반도에 있는 전제군주제 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의 수도는 '라야드'이다. 세계에서 12번째로 땅덩어리가 넓은 나라이며, 아라비아 반도에서 가장 넓은 나라 이기도하다. GDP 기준 세계 19위

 

사우디아라비아는 1930년대 초반까지 자급자족의 경제로 세계적으로 빈곤한 국가 중에 하나였다. 농업으로 수입을 얻고, 이슬람교 성지 순례자들로부터 얻는 관광 수입이 전부였다.

 

하지만 미국의 스탠더드 오일 컴퍼니와 석유양허협정을 체결한 이후 1938년 대규모 유전이 발견이 된다. 엄청난 석유 매장량으로 마른하늘에 날벼락같은 대박을 맞이하게 된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1951년에는 중동 국가 중에 최초로 바다에 유전도 발견이 된다. 육상과 해상에서 석유 생산이 되어 하루 생산량이 100만 배럴에 달했다.

 

이후 사우디아라비아는 1970년대 오일 쇼크로 한 번 더 경제에 날개를 달아버린다. 1980년 ~ 1990년대 중반까지 유가 하락으로 경제가 잠시 휴식기를 가졌지만 이후 유가는 반등해서 20세기에는 높은 생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현재 실제 권력자인 '빈 살만' 왕세자를 중심으로 과거 자원에 의존하는 경제의 위기를 겪어서 '사우디 비전 2030'으로 경제적 다각화 정책에 힘쓰고 있는 중이다.

 

 


글 참고 유튜브 영상 : 지식스쿨

https://youtu.be/QPOl79ZygOk